대학병원에 자주 다니다 보면 소비의 많은 부분이 약값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그렇게 약을 사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병이 왜 생기는지, 약은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약을 만드는 제약·바이오 회사의 주식은 어떻게 움직이는지까지 관심이 확장되었다. 생성형 AI에 바이오 투자 입문서를 추천해 달라고 물어서 찾은 책인데, 마침 도서관에 있어서 빌려 읽었다.
박한슬. 『바이오 투자의 정석』. 생각의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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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투자의 정석 | 박한슬 - 교보문고
바이오 투자의 정석 | ‘삼성바이오’는 알아보고, ‘신라젠’은 거르는 현명한 투자자가 될 수 있을까?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 2위, 꿈의 항암제 펙사벡(Pexa-Vec) 개발사로 투자자들의 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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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전반적 평가
솔직히 제목만 보면 의심이 든다. '정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투자서 제목은 대개 과대포장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읽어 보면 내용이 매우 기본에 충실하고 알차다. 바이오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처음 읽기에 적합한 입문서로서, 제약산업의 구조적 특성부터 임상시험 단계, 기술이전 계약, 매출 구조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다만 2021년에 출간된 책이므로 이후 급격히 변화한 시장 환경, 특히 GLP-1 비만치료제의 폭발적 성장, ADC(항체약물복합체) 시장의 부상, AI 신약개발 기술의 발전 등은 별도로 업데이트하여 읽을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책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서, 2021년 이후 달라진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보충하였다.
1. 제약산업이 돈이 되는 이유
진입장벽이 높다
제약산업이 투자 대상으로서 매력적인 첫 번째 이유는 진입장벽이 극도로 높다는 점이다. 이 진입장벽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생산기준이다. 의약품은 식품이나 일반 화학제품과 달리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라는 엄격한 생산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공장 설비, 공정 관리, 품질 검사까지 모든 과정이 규제 당국의 감독하에 놓이며,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하다. 즉, 아무나 약을 만들겠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둘째는 허가(제네릭) 관련 장벽이다. 제네릭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된 뒤 같은 성분으로 만드는 복제약을 말한다. 쉽게 말해 '약의 짝퉁'이 아니라 '약의 후발주자'인 셈인데, 이 제네릭조차 단순히 성분만 똑같이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오리지널 약과 동등한 효과를 낸다는 것을 입증하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마케팅 장벽이다. 의약품, 특히 전문의약품은 소비자에게 직접 광고할 수 없고, 의사를 통해서만 처방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전국의 병·의원에 영업 인력을 배치하고 의사들과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이 영업 네트워크를 새로 깔려면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이미 기존 제약사들이 탄탄한 영업망을 갖추고 있으므로 신규 진입자가 이를 따라잡기란 매우 어렵다.
특허라는 무기
제약산업에서 특허는 단순한 법적 보호를 넘어 수익의 핵심 원천이다. 신약에 대한 특허가 유지되는 기간 동안은 사실상 독점적으로 해당 약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허의 종류도 다양한데, 물질특허는 약의 화학적 구조 자체를 보호하는 것으로 가장 강력하다. 용도특허는 이미 알려진 물질의 새로운 쓰임새를 보호하며, 조성물특허는 약물의 특정 배합 비율이나 제형을 보호한다.
제약사 입장에서 특허 만료는 곧 매출 급락을 의미하므로, 특허 기간을 최대한 연장하려는 방어 전략, 즉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을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특허 기간 연장 신청, 허가-특허연계제도(오리지널 약 특허가 유효한 동안 제네릭 허가를 지연시키는 제도) 활용, 위임형 제네릭(자사 제네릭을 먼저 출시하여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 등이 있다.
반대로 제네릭 회사 쪽에서는 특허를 무효화하기 위한 공격 전략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우선판매허가권은 오리지널 약의 특허에 이의를 제기하여 성공한 첫 번째 제네릭 회사에게 일정 기간 독점 판매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다. 또한 후반부 특허를 회피하여 핵심 물질특허 만료 직후 바로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도 활용된다.
공공의료보험의 영향
제약산업의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은 공공의료보험과의 관계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약품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국가 재정으로 충당하는 건강보험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환자 입장에서는 약값 부담을 줄여 주지만, 제약사 입장에서는 국가가 사실상 가격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소비자 개인이 지불하는 금액은 실제 약가보다 훨씬 낮아지는, 일종의 막대한 소비자 할인이 이루어진다. 결국 제약사의 수익성은 국가의 보험 재정 상황과 약가 정책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2. 바이오의약품은 무엇이 특별한가
바이오의약품의 정의와 등장 배경
의약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화학합성의약품으로, 화학 반응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약이다.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알약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가 바이오의약품인데, 이것은 생물학적 유래 물질, 즉 살아있는 세포나 생명체에서 만들어지는 약을 말한다. 쉽게 표현하면 화학합성의약품이 공장에서 화학 실험으로 만드는 약이라면, 바이오의약품은 생명체를 키워서 그 산출물을 약으로 쓰는 것이다.
바이오의약품이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항체의약품의 등장 덕분이다. 항체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외부 침입자(항원)를 인식하고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단백질이다. 항체의약품은 이 항체의 작용 원리를 이용하여 특정 표적(항원)에 선택적으로 결합해 그 기능을 무력화한다. 예를 들어 암세포 표면에 과잉 발현된 특정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아 항체가 달라붙으면, 해당 암세포의 성장 신호가 차단되거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더 잘 공격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표적 특이성이 높다는 점이 항체의약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기존의 화학합성의약품이 온몸에 퍼져서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항체 의약품 개발 과정
항체 의약품을 개발하는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표적이 되는 항원에 결합할 수 있는 항체를 탐색한다. 그 다음, 해당 항체를 만들어내는 B세포를 찾아내는 스크리닝 과정을 거친다. B세포는 면역체계에서 항체를 생산하는 세포인데, 수많은 B세포 중에서 원하는 항체를 만드는 세포를 골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선별된 항체의 결합력, 안정성, 생산 효율 등을 개선하는 최적화 단계를 거쳐 의약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인다.
바이오의약품은 목축업과 비슷하다
저자는 바이오의약품 산업을 목축업에 비유하는데, 이 비유가 꽤 적절하다. 화학합성의약품은 레시피대로 만들면 항상 동일한 결과물이 나오지만, 바이오의약품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키워서 그 산물을 얻는 방식이므로 생산 조건에 따라 결과물이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다. 마치 같은 품종의 소라도 사육 환경에 따라 우유의 맛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바이오의약품에는 화학합성의약품의 제네릭에 해당하는 복제약 개념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바이오시밀러라는 별도의 개념이 존재한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과 유사한 품질, 안전성, 효능을 가진 후속 제품이지만, 완전히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제네릭처럼 약사가 임의로 오리지널 약 대신 바이오시밀러로 대체 처방을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 제조사에게는 특허 만료 이후에도 일정한 시장 방어력을 제공하는 반면, 바이오시밀러 개발사에게도 제네릭보다 훨씬 높은 가격 프리미엄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을 개량하여 효능이나 편의성을 높인 바이오베터라는 개념도 있다.
바이오시밀러의 지위 변화
2021년 당시에는 바이오시밀러의 대체 처방이 보수적이었으나, 2025~2026년 현재 미국 FDA 및 유럽 EMA에서는
'교체 처방 가능(Interchangeable)' 지정을 받은 바이오시밀러가 대폭 늘어났다. 이는 약국 수준에서 오리지널 대신 시밀러를 처방하는 것을 정당화하며, 시밀러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항체에 독성 약물을 결합한 ADC(항체-약물 접합체)가 차세대 항암제 시장의 주류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바이오의약품의 한계와 미래
바이오의약품이 아무리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으려면 의료비용 대비 치료 효과가 충분히 커야 한다. 보험 재정을 관리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고가의 바이오의약품을 무한정 보험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바이오의약품 개발은 치료 효과가 매우 크면서 다른 대안이 거의 없는 항암제 분야에 편중되어 온 경향이 있다. 암이라는 질병의 특성상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므로, 고가의 약이라도 보험 적용이 정당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바이오의약품의 높은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두 가지 방향이 모색되고 있다. 하나는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 단가 자체를 낮추는 것이다. 세포 배양 기술의 발전, 생산 공정의 자동화 등을 통해 같은 양의 항체를 더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게 되면 약가도 낮아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항체를 아예 다른 종류의 물질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RNA 치료제가 항체의약품의 잠재적 대체제로 주목받고 있다. RNA 치료제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mRNA 치료제는 체내에 특정 단백질의 설계도(mRNA)를 투입하여 우리 몸의 세포가 스스로 치료용 단백질을 만들게 하는 방식이다. COVID-19 백신(화이자·모더나)이 대표적인 mRNA 기술의 사례로, 이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검증된 것이 2021년 이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RNA간섭(RNAi) 치료제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작은 RNA 조각을 투입하여, 문제가 되는 단백질이 아예 생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3. 신약개발사는 어떻게 돈을 버는가
초기 개발 단계(비임상시험)
신약개발의 여정은 약물 후보물질을 탐색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후보물질을 찾는 방법은 다양한데, 전통의학에서 사용되어 온 천연물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하는 방법,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분석하여 그 구조에 딱 맞는 분자를 설계하는 방법, 기존에 이미 사용 중인 약물을 변형하여 새로운 효능을 찾는 방법 등이 있다.
후보물질이 발굴되면 곧바로 사람에게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세포실험을 거친다. 시험관 내에서 배양한 세포에 후보물질을 처리하여, 최소한의 유효성(약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과 안전성(세포에 심각한 독성이 없는지)을 확인하는 단계다. 다만 세포실험에서 부작용이 없다고 해서 인체에서도 부작용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포실험은 어디까지나 예비적 검증에 불과하다.
세포실험을 통과하면 동물실험 단계로 넘어간다. 생쥐, 쥐, 원숭이 등의 실험동물에 후보물질을 투여하여 실제 생체 내에서의 안전성과 약효를 검증한다. 동물실험까지 완료되면, 이 후보물질을 다른 제약사에 판매(기술이전)하거나 직접 임상시험에 진입할 수 있다.
후기 개발 단계(임상시험)
임상시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약의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하는 과정으로, 세 단계로 나뉜다. 각 단계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바이오 투자에서 매우 중요하다.

임상 1상은 소수의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하며, 약물이 인체에서 어떻게 분포되고 대사되는지, 그리고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단계다. 성공률은 약 63% 수준이며, 국내 시행 비용은 약 15억 원 정도이다. 이 단계에서 기술이전이 많이 이루어지는데, 아직 초기 단계이므로 기술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임상 2상은 소수의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약효를 확인하는 단계다. 성공률은 약 31%로 전체 임상 과정 중 가장 낮다. 이 단계는 다시 2a상과 2b상으로 나뉘는데, 2a상에서는 적절한 투여 용량을 결정하고, 2b상에서는 본격적으로 유효성을 검증한다. 국내 시행 비용은 약 40억 원 수준이다.
임상 3상은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검증을 하는 단계다. 성공률은 약 58%이며, 이 단계에서는 흔히 글로벌 제약사에 허가 및 판매 권한을 양도하는 계약이 이루어진다. 비용은 약 70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여기서 책(2021년 출간)에 제시된 비용은 국내 시행 기준이며, 글로벌 임상의 경우에는 이보다 수십 배 이상 소요될 수 있다.
허가 단계는 규제 당국에 심사를 신청하여 판매 승인을 받는 과정으로, 성공률은 약 85%다.
환자 수가 매우 적거나 긴급한 상황에서는 1/2상, 2/3상 병행임상(하나의 임상시험에서 두 단계를 동시에 진행)이 허용되기도 한다. COVID-19 백신 개발 당시에 이러한 병행임상이 광범위하게 활용된 바 있다.
투자자 관점에서 매수 시점은 주로 두 가지다. 하나는 임상 1상 진입 시점으로, 이때는 아직 불확실성이 크지만 성공할 경우 주가 상승폭이 클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임상 3상 진입 시점으로, 이미 2상에서 약효가 어느 정도 검증되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안전하며, 실제로 이 시점에서 매수하는 투자자가 더 많다고 한다.
기술이전 계약의 구조
바이오 투자에서 빠지지 않는 뉴스가 기술이전(라이선스 아웃) 계약이다. 이 계약의 구조를 이해해야 관련 뉴스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업프론트(Upfront)는 계약 체결 시 지급되는 계약금으로, 총 계약 금액의 약 10% 수준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뉴스에서 "총 계약 규모 1조 원"이라는 헤드라인이 나오더라도, 실제로 당장 들어오는 돈은 1,000억 원 정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마일스톤(Milestone)은 임상 각 단계의 성공, 규제 당국 허가 등 사전에 정한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추가로 지급되는 금액이다. 즉, 임상이 순조롭게 진행될수록 돈이 들어오는 구조다.
중요한 것은 권리 반환 조항이다. 만약 임상 결과가 나쁘면, 라이선스를 가져간 회사(도입사)는 이미 지급한 금액을 포기하더라도 계약 자체를 파기하고 권리를 돌려줄 수 있다. 따라서 기술이전 뉴스가 나왔다고 해서 무조건 계약 금액 전체가 매출로 잡히는 것은 아니며, 임상 실패 시 후속 마일스톤이 전혀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는 리스크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허가, 생산, 판매
글로벌 시장에서 신약을 판매하려면 FDA(미국 식품의약국)의 허가를 받는 것이 사실상 필수적이다. 책에서는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서 미국이 약 40%, 유럽이 약 15%를 차지한다고 언급하는데, 2024년 기준으로 보면 미국의 비중은 오히려 더 높아져 약 51% 수준까지 확대되었다. 이는 미국 시장이 약가 자율 정책과 민간보험 체계 아래에서 고가의 바이오의약품을 더 활발히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2025~2026년 들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메디케어 약가 협상이 시작되면서, 미국 시장의 약가 환경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위탁생산기관)는 반도체 산업의 파운드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신약개발사가 약을 직접 생산하는 대신 CMO에 생산을 위탁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CMO보다 CDMO(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 위탁개발생산기관)라는 용어가 더 널리 쓰이는데, 이는 단순 생산뿐 아니라 공정 개발까지 함께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CDMO 분야의 대표적 기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5년 5공장 가동을 시작하여 2032년까지 132만 리터 이상의 생산능력 확대를 추진 중이며, 셀트리온도 CDMO 자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설비 증설에 나서고 있다.
책에서는 CMO를 '슈퍼 을'이라 표현하는데, 이는 비록 계약상 '을'의 위치일지라도 제약사를 압도하는 독보적인 생산 역량과 협상력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바이오의약품 수요가 폭증하며 CDMO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투어 협력을 요청하는 CDMO의 '슈퍼 을'로서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의약품 가격 책정 방식도 흥미로운데, 연구개발비에 기회비용까지 포함하여 가격을 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많은 실패한 프로젝트에 투입된 비용까지 성공한 약 하나의 가격에 반영되는 구조이므로, 사실상 '부르는 게 값'에 가깝다. 또한 국가별로 보험 제도와 구매력이 다르기 때문에 차등 가격 전략을 적용하여, 같은 약이라도 국가마다 가격이 다르다.
해외 판매 방식으로는 현지에 지사를 설립하여 직접 판매하는 방법과, 해당 국가의 다른 제약사에 판매를 위탁하는 방법이 있다.
4. 신약개발사는 얼마나 돈을 버는가
환자 규모가 수익을 결정한다
신약의 매출 규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환자 수와 투여 횟수다. 환자 수가 많을수록, 그리고 만성질환처럼 지속적으로 약을 투여해야 하는 경우일수록 매출은 커진다. 한 번 투여로 끝나는 약보다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이 제약사에게는 더 매력적인 사업 모델이 되는 것이다. 다만 특허가 만료되면 제네릭이나 바이오시밀러가 등장하여 매출이 급격히 하락하는 이른바 '특허 절벽' 현상이 발생한다.
이 맥락에서 2021년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GLP-1 계열 비만·당뇨치료제의 폭발적 성장이다.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가 글로벌 의약품 매출 상위권에 새롭게 올라섰다.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은 원래 우리 몸에서 식후에 분비되어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데, 이를 약물로 개발하여 당뇨 치료는 물론 비만 치료에까지 적응증을 확대한 것이다. 2024년 기준 글로벌 의약품 매출 1위는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 2위가 오젬픽, 3위가 듀피젠트(성분명 두필루맙)로, 매출 상위 10개 품목 중 6개가 바이오의약품이다. GLP-1 계열 시장은 2023년 약 300억 달러에서 2033년까지 1,2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현재 51개 이상의 GLP-1 관련 약물이 임상 개발 중이다.
희귀질환 치료제라는 틈새시장
주요 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아직 치료제가 없는 희귀질환 분야가 남은 파이로 주목받고 있다. 희귀질환 치료제에는 규제 당국이 여러 혜택을 제공한다. 허가 기준이 완화되어 적은 수의 환자로도 임상시험이 가능하고, 허가 후 7년간 추가 독점 판매권이 부여된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환자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블록버스터급 매출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약가를 매우 높게 책정해야만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어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2024년 FDA 승인 신약 50개 중 52%가 희귀질환 치료제였으며, 이는 FDA가 미충족 의료 수요 해결에 집중하는 정책 기조를 반영한다.
만성질환용 검사기기 섹터
제약 분야 외에 만성질환용 검사기기 분야도 투자 관점에서 유망하다. 당뇨 환자가 매일 혈당을 측정하는 혈당측정기처럼, 만성질환 관련 검사기기는 한 번 사면 소모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구조여서 안정적인 반복 매출이 발생한다. 또한 이 시장은 제네릭 같은 복제품 경쟁이 적고, 규제 인증의 장벽이 높아 독과점 경향이 있어 진입자가 한정적이다.
신약이 항상 유리하지는 않다
바이오 투자의 함정 중 하나는, 좋은 신약을 개발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대박이 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사의 처방 행태는 매우 보수적이며, 변화도 느리다. 허가를 받은 뒤에도 시판 후 조사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견되어 퇴출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이미 오랫동안 사용되어 안전성이 검증된 기존 약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신약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하위호환 제네릭과도 경쟁해야 한다. 기존 약의 제네릭은 가격이 매우 낮기 때문에, 신약이 기존 약보다 약간 더 나은 효과를 보여주더라도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으면 보험 적용이 거부되거나 처방이 제한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점유율을 확보하고 매출을 키우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들은 의료계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학회 발표, 임상 연구 지원, 의학 교육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신약의 우수성을 알리는 활동을 펼친다.
플랫폼 기업이라는 개념
바이오 투자에서 '플랫폼 기업'이란 특정 하나의 약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의약품에 범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말한다. 플랫폼 기술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탐색 플랫폼이다. 약물 후보물질을 찾는 과정을 효율화하는 기술로, 분자구조 시뮬레이션이나 대규모 스크리닝 기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영역에서 2021년 이후 가장 큰 변화는 AI(인공지능)의 본격적 활용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AlphaFold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기존 실험 방식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해 주었다. 2024년에는 AlphaFold3이 공개되어 단백질뿐 아니라 DNA, RNA, 소분자 등 다양한 생체분자 간의 상호작용까지 예측하게 되었고, AlphaFold 개발에 기여한 연구자들은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AI 신약개발 시장은 2023년 약 9억 달러에서 연평균 4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빠르게 확대 중이며, 글로벌 빅파마는 물론 엔비디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IT 대기업들도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AI 설계 신약의 임상시험도 이미 시작되고 있어, AI가 신약개발 과정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생산 플랫폼이다.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사용되는 CHO(중국 햄스터 난소) 세포나 대장균 등의 숙주세포 배양 기술이 대표적이다. 더 많은 양의 약물을 더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여러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두루 활용할 수 있다.
셋째는 흡수·전달 플랫폼이다. 약물이 체내에서 원하는 부위에 정확하게 도달하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정맥주사로만 가능하던 약을 피하주사나 패치제로 바꾸는 제형 기술, ADC(항체약물복합체)처럼 항체에 독성 약물을 결합시켜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 그리고 mRNA를 체내 특정 부위로 전달하는 기술 등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ADC 시장은 2021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분야다. ADC는 암세포를 표적하는 항체에 강력한 세포독성 약물(페이로드)을 링커로 연결한 구조로, 항체가 암세포를 찾아가면 그곳에서만 독성 약물이 방출되어 정상 세포 피해를 최소화한다. 2019년 다이이찌산쿄·아스트라제네카의 HER2 ADC '엔허투'가 임상 성공을 거두면서 ADC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ADC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94억~108억 달러에서 2030년대 초반 240억~32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15~20%에 달한다. 현재까지 FDA 승인을 받은 ADC 약물은 13개 이상이며, 이중항체 ADC, 정교한 링커 기술 등을 활용한 차세대 ADC(ADC 2.0)의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리가켐바이오가 17개의 ADC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8조 원 이상의 기술이전 계약을 달성하는 등 K-바이오의 ADC 경쟁력이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은 자체적으로 신약을 개발하여 직접 시장에 내놓을 수도 있고, 플랫폼 기술 자체를 다른 제약사에 기술이전하여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하나의 파이프라인 실패에 모든 것이 걸리는 단일 파이프라인 기업보다 리스크가 분산된다는 점에서, 플랫폼 기업은 투자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 대상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2021년 이후 주요 변화 요약
책이 출간된 2021년 이후 바이오 산업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6,323억 달러(약 906조 원)로 전체 의약품 시장의 40%를 점유하게 되었고, 연평균 13.6%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시장의 비중은 책에서 언급한 40%에서 51%로 대폭 확대되었다.
GLP-1 계열 비만·당뇨치료제(오젬픽, 위고비, 마운자로 등)가 바이오 시장의 새로운 블록버스터 카테고리로 부상하였다. 이 시장은 2033년까지 1,2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며, 단일 작용제에서 이중·삼중 작용제로 진화하고 있고, 주사제에서 경구용 제제로 전환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2026년 들어 노보노디스크가 위고비 가격을 50%, 오젬픽 가격을 35% 인하하는 등 '성장과 가격 압박이 공존하는 단계'에 진입한 점도 주목할 변화다.
ADC 시장이 급성장하며 항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고, AI 신약개발 기술이 후보물질 탐색에서 임상시험 설계까지 신약개발 전 과정에 본격 도입되었다. CDMO 시장은 미국 바이오보안법에 따른 중국 기업 견제 움직임과 바이오의약품 수요 증가가 맞물려, 한국 기업(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에 반사이익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마무리
『바이오 투자의 정석』은 바이오 산업의 기본 구조와 투자 논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탁월한 입문서다. 진입장벽, 특허 전략, 임상시험 단계, 기술이전 계약의 구조, 매출 결정 요인까지 체계적으로 설명되어 있어, 이 책 한 권으로 바이오 투자의 기본 프레임워크를 세울 수 있다. 다만 2021년 출간이므로, GLP-1 비만치료제의 폭발적 성장, ADC 2.0 시대의 도래, AI 신약개발의 본격화, CDMO 시장 지형 변화 등은 이 글에서 보충한 내용과 함께 최신 자료를 추가로 확인하면서 읽기를 권한다.

